유관순 열사의 친구이자 독립운동가인 남동순(사진) 할머니가 2010년 4월 3일 밤 11시
서울 강북구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1903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6살 때 유관순 열사를 만나 소꿉 친구로 자랐습니다.
이화학당에 다니던 19년 열사와 함께 천안에서 3·1 만세 운동을 벌였다가 붙잡혀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당시 활동상을 기억하는 마지막 생존자였던 고인은 2007년 열사의 표준영정 제작에 참여해 얼굴 생김새·체형·복식 등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3·1 정신 대상, 문화시민상, 국민훈장 목련장, 제1회 윤희순상 등을 받았습니다.
남동순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당시 인터뷰 내용-유관순 열사의 생존해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라고 들었습니다.
(유)관순이와는 6살 때부터 한동네에서 자라면서 사방치기를 하고 이리 저리 들판에서 뛰어놀았던, 말 그대로 소꼽친구였지요. 관순이는 씩씩하고 무척 총명한 아이여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같은 학교(이화학당)로 진학을 하게 됐고 비록 다른 반이었지만 만세운동을 함께 기획할 정도로 자주 어울렸어요. 1919년 3·1운동에 조선의 많은 여성들이 참여했지요. 저희 둘 역시 그랬고. 그러던 중 관순이가 고향인 천안 병천으로 내려가 독립운동을 벌였어요. 저도 함께 가서 태극기를 만들어 나누어 주고 사람들이 모이는 장날만 되면 만세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충북 진천으로 청주로 여기저기 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장터에서 “일본을 타도해서 우리 땅에서 꼭 내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 설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열변을 토하니 모든 이가 열띤 호응을 보여줬지요. 그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그러던 중 유관순 열사가 잡혀 감옥에 투옥되셨지요.
독립운동을 한창 벌이던 어느날, 일본 순사가 장터에 나타나 관순이를 체포해 갔고, 충남 공주 소재 감옥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관순이네 집에 불을 질러 살림살이는 물론 부모님의 목숨도 앗아갔어요. 관순이는 그후 서대문 감옥으로 옮겨졌고 그 곳에서 일본인 판사에게 재판을 받아 7년형을 선고받았어요. 그 당시 저도 같은 감옥에 투옥돼 있었는데 우리 둘은 따로 갇혀 있어 서로 얼굴을 볼 수도, 대화할 수도 없었어요. (눈시울을 붉히며)관순이는 모진 고문을 받다가 일본 경찰의 모진 폭행으로 결국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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